하트가 새겨진 사랑의 메시지에 소망을 가득 담아 나무에 매달아 주세요.
아브다카다브라~~~ 소원이 이루어질꺼예요!
 
Love propose
There is a wish tree in that building, so that you can write your wishes on note given by staff and then hang it on a tree.
Wish for eternal love!
Visitors can take pictures with various fun poses blending nicely with exhibitions. Cameras as well as video equipment are permitted in the museum.
 
爱情博物馆
那里有一棵许愿树, 你可以从员工那里索取愿望字条把你的愿望写上挂到树上去. 祈求爱情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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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의 기원
 
영어 love즐겁게 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lubet에서 유래했습니다. 독일어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Liebe도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어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amour는 라틴어 amor에서 유래했는데, amor는 그리스어 eros의 라틴어 표현입니다. 우리말사랑은 중세어(思量)’에서 유래했는데, 당시 思量(사량)은 단순히 많이 생각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천자문(千字文)》에서는 라고 새기고 있으며, ‘은 한자어 思量이라고 적었습니다. 생각을 의미하는 사량이 사랑()의 의미로 바뀐 것은 16세기 이후로, ‘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신의 사랑이라는 뜻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남녀의 사랑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은 훨씬 뒤로, 1920년 탈고했다는 나도향의 소설 〈청춘〉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사랑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랑은 남녀 간의 로맨틱한 사랑(romantic love)입니다. 사랑(love)이 현재의 의미, 즉 계급이나 경제 조건 등의 외부 조건을 떠나 남녀 개인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동반자적 사랑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는 18세기 말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 이후입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서양의 love 개념이 소개될 때는 love를 연애(戀愛)라고 번역한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연애는 전통적인 한자에서 남녀 사이의 열정을 뜻했던 연()과 당시 서양풍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애()를 합해서 만든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애라는 말은 love 중에서 남녀 사이의 사랑만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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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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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하면 떠오르는 연인들이 달콤한 초콜릿 같은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 데이!
행복한 연인들이 날로 기념되는 발렌타인데이, 하지만 그 속에는 슬픈 사랑의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270 2 14, 이날은 사제 발렌타인이 처형된 날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원정을 떠나는 병사들이 정신이 해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결혼을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두 남녀를 안타까워한 발렌타인 신부는 이들 사이의 결혼을 황제의 명을 거역하여 몰래 허락하고 주례를 서고 결혼을 승인했습니다. 결국 발렌타인은 처형을 당했고, 사람들은 이날을 사랑의 날로 정하고 연인끼리 사랑의 선물이나 연애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인들의 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심은 원래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일본의 한 제과업체가 초콜릿을 선물하여 사랑을 고백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부터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제과업체들이 이날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해서 말이 많긴 하지만, 연인들에게는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특별한 날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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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
 
사랑은 역사적·지리적·종교적 그리고 관계 형태에 따라서 다양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은 에로스로서 육체적인 사랑에서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사랑, 즉 아가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신에게 대한 사랑을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말하는 사랑은 인간중심적인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사랑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라는 데서 힌두교에서의 카마, 유교에서의 인(), 불교에서의 자비를 가리킵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받는 대상에 따라 사랑을 형제애(兄弟愛), 모성애(母性愛), 성애(性愛), 자기애(自己愛), 신에 대한 사랑 등으로 나뉩니다. 형제애는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특색은 배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성애는 어린애의 생명과 욕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입니다. 성애는 완전한 융합, 곧 다른 한 사람과 결합하고자 하는 갈망입니다. 자기애는 나 자신의 자아에 대한 사랑으로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불과분의 관계를 갖습니다. 신에 대한 사랑은 분리 상태를 극복하고 합일을 이룩하려는 욕구에서 생깁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합리한 현상입니다. 그에 의하면 사랑은 비정상적인 정신현상이고 유년 시절의 사랑의 대상으로부터의 감정전입니다.
 
설리반에게 있어 사랑과 친밀감의 의미는 친밀감은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상황의 어떤 유형으로서 개인적 가치의 모든 구성요소를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개인적 차이의 확인은 제휴라고 부르는 관계를 요구합니다. 더욱더 접근하는 상호간의 만족의 추구에 있어서, 그리고 점점 더 유사해 가는 안전성의 조작의 유지에 있어서 상대가 표명한 욕구에 대해 어떤 사람이 명백히 정식화된 방식으로 행동을 적응시키는 것입니다.
 
한국 소설사에서도 사랑을 주제로 가진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광수의 『무정』, 김동인의 『젊은 그들』, 심훈의 『상록수』, 강경애의 『인간문제』,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신경숙의 『외딴방』 등은 사랑을 주제로 담고 있는 소설들입니다.
 
 
 
사랑에 관한 명언
 
The first duty of love is to listen. (사랑의 첫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 폴 틸리히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사랑은 눈으로 보는게 아닌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 윌리엄 세익스피어 작가
 
Life’s greatest happiness is to be convinced we are loved.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 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 빅터 위고 작가
 
사랑­그것은 서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방향을 내다보는 것이다.
- A. 드 생텍쥐페리 20세기 프랑스 소설가, 비행가
 
사랑의 괴로움은 달콤하다. 사랑의 슬픔은 즐겁다. 사랑의 괴로움은 기쁘다. 사랑 때문에 죽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 E. M. 아른트 18-19세기 독일 시인, 역사가
 
그대와 함께 걸을 때, 나는 단추구멍에 꽃 한 송이 꽂은 기분이다.
- W. M. 새커리 19세기 영국 소설가 -
 
그대로 인하여 세계를 잃는 일이 있어도 세계를 위하여 그대를 잃고 싶지 않다.
- G. 바이런 19세기 영국 시인 -
 
"마르코스는 밤에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내가 보고 싶었다고 얘기하곤 했죠. 잠든 그 순간에도 나를 그리워했던 그 사람은 지금 얼마나 내가 보고 싶을까요..."
- 이멜다 마르코스 필리핀 정치인-
 
"나에게 기적은, 다시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하루 하루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은 날마다 기쁨이고 기적입니다"
- 크리스토퍼 리브 영화배우
 
"진짜 사랑은 언젠가는 상대의 마음에 가서 닿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랑이 조용한 것일수록, 닿았을 때 마음의 울림은 더 크다는 것도 말입니다"
- 왕조현 영화배우
 
"사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100여년을 살면서 내가 깨달은 단 한 가지 사실이 바로 이것입니다.."
- 캐서린 햅번 영화배우-
 
 
 
세기의 사랑이야기
 
1.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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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0년경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상 그 어떤 여인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녀의 삶과 야망, 그리고 사랑. 파라오 율법에 따라 남동생들과 두 번씩이나 결혼했고 왕권을 쟁취하기 위해 남편이며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의 격렬한 권력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리를 하죠. 그리고 로마 최고 권력자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았습니다.
기원전 48년 클레오파트라는 남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고 강제로 폐위되어 유배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집트를 침공한 카이사르의 막강한 힘을 빌려 왕권을 되찾았습니다. 그의 연인이 되어 아들 카이사리온까지 낳았지만, 카이사르가 정적들에 의해 암살당하자 클레오파트라는 당시 로마 최고의 실력자로 부상한 안토니우스를 유혹했죠.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졌고 무려 10년을 이집트에 머뭅니다. 그리고 둘은 자신들의 사랑이 당순한 열정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결혼식을 올리죠. 사랑에 빠진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아내 옥타비아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또 다른 권력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의 지배권을 동서로 양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패전 사령관이 된 안토니우스는 자결하고 맙니다. 그가 죽자 클레오파트라 역시 안토니우스를 따라 자결을 합니다.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온 그녀는, 곧 최후를 맞았고 역사가들은 그녀가 독서에 물려 죽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2.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연인입니다. 그것도 보통의 연인이 아니라 18세에 14살 연상인 32세의 모딜리아니를 만나, 그가 사랑한 연인이자 모델이자 모디의 마지막 생애 3년 동안 불꽃 같은 예술 샘이 쏟게 한 마중 물이었습니다. 3년 뒤 모딜리아니가 죽음을 맞이할 때 잔느는 모디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 말고도 뱃속에 8개월 된 아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평생의 연인 잔느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굳건히 하지만, 재정적인 여러움으로 고생하던 중 1920년 지병인 폐결핵이 심해져 사망합니다. 그는 얼음장같이 찬방에서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의 침대 주변에는 몇 개의 빈 포도주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이 뒹굴고 있었죠. 잔느는 모디가 병원에 실려가 사망한 지 이틀 만에 친정 아파트 6층 창문에서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그녀의 나이 불과 스물 두 살 때였습니다. 무명에다 낭인이나 다름없는 모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틈 어엿한 집안에서 자란 잔느가 그렇게 자살하자 충격에 휩싸인 잔느의 가족들은 모디를 원망하면서 둘의 시신이 함께 묻히는 것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3. 파리스와 헬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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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그리스와 트로이와의 전쟁입니다. 무려 10년이나 지속한 이 전쟁은 양쪽의 연합군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들까지도 두 편으로 갈라져 가담한 총격적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트로이는 아주 철저하게 파멸되었습니다.
이 끔찍한 비극의 시작은 바로 불륜이었습니다. 바로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와 그리스의 왕비인 헬레네의 사장이 비극의 씨앗이었죠.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해주겠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파리스, 트로이의 사절로 스파르타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인 헬레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그녀가 바로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미녀 헬레네, 그녀 역시 젊은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트로이로 도주하죠.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급기야 트로이에 선전포고를 하고 신들까지 가세한 지상 최대의 전쟁을 벌이게 되는 극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의 끔찍한 정쟁, 트로이는 함락되었고 결국 파리스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4. 헨리 8세와 앤 볼린
영국 역사에 가장 이야깃거리를 많이 남긴 인물인 헨리 8세는 튜더 왕조의 헨리 7세의 둘째 아들로 형이 요절하자, 1509 18살에 왕위가 오릅니다. 영국 역사에는 헨리 8세만큼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도 없었습니다.
그는 영국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었으며, 6명의 아내 중 2명을 사형에 처하는 등 영국 역사에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죠. 그중에서도 천일의 스캔들이라고 불리는 앤 볼린과의 사랑이야기는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 등에서 재창조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앤 볼린은 헨리 8세가 종교까지 바꿔가면서 맞이한 두 번째 왕비였습니다. 1525년 헨리 8세는 당시 캐서린 왕비의 젋은 시녀이자 한때 자신의 애인이었던 메리 볼린의 언니 앤 볼린에게 눈독을 들입니다. 왕비 캐서린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던 헨리 8세는 젋은 앤 볼린이 왕자를 낳아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죠.
하지만 로마 교황청이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을 반대하자 결국 헨리 8세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스스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된 다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앤 볼린과의 결혼을 성사시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앤의 순산, 하지만 왕자가 아닌 공주였습니다. 그리고 1534년 앤이 상상 임신 혹은 휴산을 하면서 헨리 8세는 그녀가 자신에게 아들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앤은 자기 오빠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남자와 근친상간을 하고 반역을 조장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됩니다. 그녀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의심되는 남자들도 모두 고소당했죠. 1536 5 2, 앤은 포박당한 채로 런던 탑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녀는 간통, 근친상간, 반역의 죄로 고발당했으며, 심지어 앤 볼린은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도 받았습니다.
참수형이 확정되자 앤은 자신의 시녀에게 내 목이 가늘어서 다행이다라고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고 합니다. 동생 로시포드 공작이 처형당한 지 이틀 후인 5 19, 앤 볼린은 런던 탑에서 참수되었습니다. 사형장에서 앤 볼린은 구경꾼들에게 왕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충성을 다해 섬겨달라고 부탁하는 연설을 남겼죠. 앤 볼린의 마지막 말은 주님께 제 영혼을 맡깁니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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